장마
비가 오면 늘 2011년 여름이 생각난다.
그 해 여름은 유독 매일 같이 비가 내렸고 그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시험장으로 가는 길은 엄마가 태워다 줬는데 데러다주는 엄마한테 짜증을 많이 부렸다. 전날 푹 자려고 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너무 긴장해서 목이 타 물을 마시려 뻣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날이 아니라도 제멋대로인 적이 하도 많아 엄마한테는 늘 미안하다. 나는 철이 너무 늦게 들었다.
비오는 날엔 감수성이 풍부해지는지 서글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엄마를 생각해서 인거 같기도 하다.
초등학생인 어린 내가 볼 때 엄마는 마치 누군가의 시중들기 위해 살고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와 동생들이 티비 보고, 밥을 먹고, 밖에 나가 신나게 놀 때에도 엄마는 엉덩이 붙일 새가 없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또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했다. 궁금했다. 저 여자는 언제 행복할까.
진학할 고등학교, 대학교, 직업 선택 같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서 엄마는 반대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니 인생이니까 니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러 엉덩이를 뗏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건 형벌 같아 보였다. 긴 장마에도 끝이 있는데 엄마는 언제 형벌의 복역을 마치고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될까? 우리가 취업하면? 아니면 우리가 결혼해서 따로 나가 살면? 그럼 그땐 엄마에게도 자유가 찾아올까? 엄마를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될 자신이 없어 엄마 되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엄마 나는 애 안 낳으려고” 라는 말에 엄마의 대답은 그때와 변함 없다.
이젠 나와 동생들이 다 독립해서 예전처럼 집안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엄마는 조금은 더 행복해졌을까?
오늘도 그 날처럼 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