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부르는 노래
싸이월드 미니홈피 말고도 당시 유행했던 싸이 블로그에 글을 잔뜩 써 놨는데 블로그가 폐쇄되는 바람에 글이 다 없어졌다. 탓 할 사람도 없이 백업을 안 한 내 잘 못이지.
그 때부터 백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훗날 회사에서 틈날때 마다 직원들에게 서버에 자료 빼먹지 말고 올리라는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여하튼 작은 조각이나마 미니홈피에 남아 있는 몇 편의 글을 읽어보니 아니 이게 정녕 내가 쓴 글이 맞소이까?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찌하여 20대의 그녀는 글을 재밌게 잘 썻던가요.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라 상당히 주관적으로 후한 점수를 메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내가 이다지도 멋진 사람이었단 말인가. 왜 아무도 내가 멋지다고 안 알려줬지?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 같네.
그에 비해 30대의 글은 뭐랄까. 심심하고 심각하다.
인생이 노잼이라 글도 노잼인가?
40대의 나는 글도 인생도 기깔나게 재밌으면서도 품위 있기를...
그건 그렇고, 20대 때 그렇게 글을 썼을 거면 멈추지 말고 계속 썻어야지. 왜 그만 둬?
과거의 나에게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다. 네 녀석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 그게 내가 사실 먹고 사느라 바빳어.
- 얼마나 뭘 거창하게 먹고 살았길래.
- 아니야 정정할께. 생존하느라 바빴어.
- 살아 남았으니 이제 글을 써 봐.
- 아니 자꾸 무슨 글을 쓰라고 해.
- 쓰라면 써.
- 맨날 이런 식이야. 남들한테도 그렇고 스스로한테도 이유도 말 안 해주면서 냉정하게 왜 결론만 말해. 좀 더 친절히 얘기해 줘.
- 하...그러니까 내말은. 거 왜 있잖아 빼어나게 예쁜 사람 보면 너는 연예인 해도 되겠다. 라고 하잖냐. 노래를 소름 끼치게 잘하는 사람한테는 너는 천상 가수다. 그런 얘기. 너한테는 일종에 그런 소질이 있다니까.
-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런게 나한테 있었으면 벌써 등단하고 작가님 소리 들었겠지 여기서 자아분열 대화를 하고 앉았겠냐.
- 그치 그게 연예인과 작가의 차이야.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는 상대한테도 바로 보이는데, 가수는 노래를 불러야 노래 잘 하는줄 알고, 작가는 글을 써야 잘 쓰는 줄 알아채지. 쓰지 않으면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글을 쓰라고. 보이게.
지금 너는 노래 졸라 잘 하는데도 한 소절도 안 부르는 가수랑 같아.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리하여 싸이월드 블로그 대신에 여기에다가 글을 쓰게 된 장황한 서사라 하겠다.
글로 노래 부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