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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 취미

김영심 2023. 4. 1. 21:27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한때는 내가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지 않은 편인데 굳이 항변 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눈치보지 않고 행동해도 큰 탈 없던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고 싶다.

부모님한테 혼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은데, 그 드믄 경우에서 조차 혼날만한 짓을 해서였으므로 억울함 같은 건 없었고 더군다나 장녀인데다가 부모와 조부모 말고는 손위의 사람이 없던 터라 타인의 감정을 세세히 살필만한 상황에 놓인 적이 별로 없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덴 더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입은 잘 하는 편이라 음악이나 책의 정서는 거의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특기를 갖고 있어서 주인공과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에 자주 이른다.

요즘은 넷플릭스 “더글로리”에 빠져서 욕이 늘었다. 무릇 만물은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은 혼재하기 마련이다.

때는 바야흐로 20대 초반, 그러니까 대학생 김영심이 안고 있던 가장 주요한 감정은 우울이었다. 그때는 그게 멋인줄 알았고, 진정한 어른이라함은 고독을 자유자재로 씹을 줄 알아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사고방식에 심취해 주로 우울한 음악과 서적을 가까이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주인공의 정서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경향으로 그 시절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그 자체였다.

교회오빠 대신 교회동생이 있다.
전 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할 게 없어서 혼자서 교회에 나갔다. 그 전에 교회에 나갔던 적은 여름성경학교 몇번이 전부였으니 이별의 충격파 때문일까. 아무리 할 게 없다고 하지만 통상적인 내 멘탈과 상식에 비추어 일관성 없는 행위이긴 했으나 어쨌든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교회를 어쩐일인지 매주 성실히 나갔다. 얼추 신앙생활이 익숙해 질 때 쯤 친해진 교회동생이 있었으니 음향감독을 꿈꾸는 학생으로써 나와 비슷하게 음악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초딩때부터 난 의미도 모르는 노래를 듣곤 했는데 가요톱텐을 필두로 팝송을 거쳐 클래식에 빠질때 쯤 중딩때는 일본음악을 접했으며 고딩때는 힙합을 흥얼 거리다가 대학생때는 재즈를 거쳐 국악과 판소리를 찾다가 지금은 아이돌 음악을 듣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꾸준히 교회를 나간 덕분에 일주일에 한번은 그 동생과 간혹 음악 얘기하면서 이곡 저곡 서로 추천해 주었고 그때 추천 받은 앨범이 brand new heavies 였다.

앨범엔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있지만 그때부터 밝고 신나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우울함과 쓸쓸함은 별로 멋대가리가 없어 보였고 청승맞게까지 느껴졌다.

왜냐. 정신 차려보니 남자친구와는 헤어졌고, 남들은 취업하고 사회생활 하는데 나는 그 나이 먹도록 백수에다가 뭐 하나 이뤄낸거 없는 인생은 진짜, 레알로 우울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현실이다. 현실이 이 지경이니 고독과 우울은 더 이상 곱씹고 즐길만한 취미 수준을 넘어서 되려 빛도 없고 출구도 없는 터널에 나를 가둬 버릴 것만 같다. 이쯤되니 우울이 무섭다. 여기에서 탈출하고 싶다. 어두운 터널에서 길을 찾기 위해 밝고 긍정적인 메세지가 담긴 음악을 손전등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이란 건 밝은 빛 속에 있을 때나 취미로 삼을 수 있는 법이지 현실이 어두우면 그건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된다.

나에게 가장 우울한 시기가 20대라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보면 당연하다 싶은게 세상에 참 신기하고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반면에 뭘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가장 가난한 시절이기도 했다.
심지어 경험까지 미천하여 열정은 있지만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마치 허허벌판의 천둥 벌거숭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두번째 스물살인 지금은 아예 우울이란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피곤하고 피로한 사회를 집어 팽겨치고 조금이라도 힘 빠지는 소리는 그만 듣고 또 그만 하고 싶다.

오후의 햇살 아래 시원한 나무 밑 잔디 밭에서 선글라스에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시원한 레몬에이드 마시며 옹기종기 사람들과 둘러 앉아 소풍나온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어 제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