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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양말

김영심 2025. 5. 1. 13:45

인간이란 얼마나 부조리한가. 합리적인척 하지만 실상은 편견과 아집의 챗바퀴속에서 살아간다. 일상 속에서 가장 흔히 목도하는 풍경은 매일 신는 양말에서부터 출발한다.

본격 양말 얘기를 하기 전에 장갑 얘기부터 운을 띄워 보겠다. 장갑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벙어리 장갑과 손가락 장갑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보자면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통으로 묶는 벙어리형 보다는 다섯 손가락을 각기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손락형이 자유롭고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벙어리 장갑이 세상에서 멸종되지 아니하고 끈질긴 명맥을 이어온 이유는 나름이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 중 으뜸은 심미적인 이유라고 본다.

‘벙어리장갑 = 귀여움’ 등식이 성립한다. 벙어리형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하나씩 따로 떼어 움직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만큼의 어린이에게는 추위로부터 손을 보호하는 따뜻함을 누리는 주목적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다보니 벙어리 장갑 = 아이들이 착용 = 아이들은 귀여워 = 벙어리 장갑은 귀여워의 사슬로 이어오게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 제작단가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한 사람이 동일한 재료로 제작할 때 벙어리형 보다 손가락형이 더 바느질을 많이 해야하고 그 만큼 실도 많이 쓰며 시간도 더 걸린다. 우리는 통상 공임비와 재료비가 더 드는 걸 고급이라 칭한다. 즉 벙어리형과 손가락형 중에 고급은 손가락형인 것이다.

자 이제 처음 시작했던 양말 얘기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매일 신는 양말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총인구 대비 통계를 낸다면 구할 이상은 벙어리 양말일 것이다. 주변에 발가락 양말을 신는 사람을 본적 있는가? 아니 그 전에 이 글을 읽는 당신부터라도 발가락 양말을 신어본 경험이 있는가? 아마 평생 발가락 양말에 발을 넣어 본 적 조차도 없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앞서 손가락 장갑이 고급이라면 발가락 양말도 고급이지 않을까? 공임비와 재료비를 떠올려보라. 이 둘의 본질이 결코 다르지 않는데 어찌하여 발가락 양말은 손가락 장갑과는 완전히 다른. 고급이기는 커녕 놀림과 우스꽝스러움의 표상이 되었을까? 선입견을 넘어 우리사회에 흐르고 있는 이념의 화석화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장갑은 추운 겨울이나 운동할 때와 같이 특정 계절 혹은 특수한 상황에나 쓰이지만 양말이라함은 인간이 매일 입는 속옷과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피복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양말을 대충 꿰어 신는 정도로 홀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응당 마땅 고도리의 공평한 대우가 아니다. 발가락 양말을 향한 사회적 시선을 재고하고 제대로 된 처우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발가락 하나하나 온전히 따로 떼어 움직일 수 있고, 발가락 사이사이에 흐르는 신선한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그대들의 발가락에게 자유를 허 하자.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어림짐작으로 손가락질하는 편견과 아집의 챗바퀴를 부숴버려야 한다.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굴종의 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부로 나는 자유를 향한 자발적 투사가 되기를 선언하며 이에 대한 표징으로 여태까지는 암암리에 신던 발가락 양말을 이제부터는 당당히 대놓고 신겠다. 내가 발가락 양말을 신고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러한 깊은 뜻이 있는 줄 그대들은 알아 주기를 바란다.

발가락 양말을 신음으로써 우리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몸소 실현하는 운동가가 된다. 발가락 자유 연합회 동지들이여. 우리 만나는 날 그대의 발을 살며시 들어 벙어리양말 추종자들은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발가락 브이를 보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