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6

마땅한 처벌

요즘 글을 통 쓰지 못한 이유는 삶이 평화로워서이기도 하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내 영혼이 미디어에 잠식 당했기 때문.퇴근 후 혹은 주말에 30분만 잠시 쉬어야지 하며 휴대폰을 잡으면 30분이 3시간이 되기 일쑤다. 나의 영혼은 미디어에 달달하게 절여져서 거의 잼이 되어가고 있다. 잠깐이라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을 보려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몇 페이지 읽다 말고 다시 휴대폰으로 손을 뻣쳐 그 속에 함뿍 뇌를 담군다. 그렇게 현대 문물과의 싸움에서 나는 백전백패의 성적으로 장장 1년 넘게 얻어터지고 있다.과거의 삶은 그렇다쳐도 앞으로의 남은 생애까지 흐리멍텅하게 연명할 순 없지 않을까? 라고 잠깐 제 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는데 이 마저도 관성처럼 여겨질 정도로 의지는 이미 바닥을 뚫고 지..

카테고리 없음 2026.05.04

취향 수집가

21살 혼자 한 달 간 유럽 자유 배당여행을 갔다.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 알바를 두탕씩 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 했다. 그때 내 대학 동기는 나같으면 그 돈이면 성형수술을하지 배낭여행을 왜 가냐는 말을 했을 정도로 주변의 친구나 지인 중에서 그 나이에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얼굴이냐, 여행이냐. 여행은 인생과 꽤 닮아있다고 하니 나는 그 돈으로 얼굴 대신 인생을 성형하기로 했다.영어도 잘 못하는 21살 작은 동양 여자애가 혼자 유럽에 간다 함은 외롭고 짠내나는 고생담일 수 밖에 없는 수순이었지만 돈 벌러 간게 아니라 (비록 빠듯하지만) 돈을 쓰러 간 여행이었으므로 당연히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서양의 발달된 기술과 찬란한 문화, 예술을 목도한 ..

카테고리 없음 2026.04.25

영혼의 대화

문득, 아주 오랫동안 제대로 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줄 적는 일기 말고,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보내는 메일 말고, 솜뭉치처럼 흐릿하게 뭉쳐 있는 생각들을 한 가닥씩 풀어 직조해내는 글 말이다. 그런 글은 분량과 상관없이, 쓰고 나면 개운하다. 땀 흘려 운동을 마친 뒤의 상쾌함 같기도 하고, 감기 기운으로 으슬으슬할 때 뜨끈한 곰탕 한 그릇을 비워낸 뒤의 든든함 같기도, 추운 날 비바람을 피해 들어간 따뜻한 사우나 같기도 하다.구마 사제로 유명하신 김웅렬 신부님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의 영혼에 숨어든 악마를 몰아내려면, 반드시 그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그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악마 스스로 말하게 할 때까지 지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름을 알아하는 이유는..

카테고리 없음 2026.04.25

빨래방

아이슬란드까지 와서 빨래방이라니. 소중한 돈과 그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을 투여한 여행인데 빨래 같은 행위로 상당량의 자원을 허비해야 할까? 라고 아주 잠깐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언제나처럼 정작 어불성설은 빨래가 아닌 내 생각이다. 아무리 황금 같은 여행이라도 쉼표가 필요하다. 쉼표의 빨래방에 왔기에 지금처럼 글 한줄이나마 쓸 수 있게 된 것이 그 증거이다. 휴식의 대명사인 여행이라는 행위에서 조차 그럴진데 일상에서라면 더욱 쉼표를 자주 찍어줘야 밸런스가 맞춰지겠구나 싶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쉬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마도 어렸을 때 읽은 개미와 배짱이 우화에서부터 발발되었다고 추측한다. 나를 포함한 전 지구적 어린아이들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일꾼으로 길러지기 위한 사상적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카테고리 없음 2025.12.25

명품

명품의 본래 의미는 장인이 정성들여 만든 제품이라는 뜻일텐데 제품의 99%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만들고 상표만 유럽에서 붙이는 걸 과연 명품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치품이라고 칭하는게 적합하겠다. 명품이 좋거나 나쁘다의 이분법적인 선, 악의 개념으로 나누는 건 다소 일차원적이라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 자체에서 뿜아져 나오는 아우라로 수수하고 단아한 차림새로 명품 이상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내면이 그렇지는 못하기도 하거니와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유물론적이기도 하여 보이는 것에 상당한 기준을 두기 마련이다. 특히나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는 외관이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오랫동안 서로를 잘 아는 가족이나..

카테고리 없음 2025.10.23

발가락 양말

인간이란 얼마나 부조리한가. 합리적인척 하지만 실상은 편견과 아집의 챗바퀴속에서 살아간다. 일상 속에서 가장 흔히 목도하는 풍경은 매일 신는 양말에서부터 출발한다. 본격 양말 얘기를 하기 전에 장갑 얘기부터 운을 띄워 보겠다. 장갑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벙어리 장갑과 손가락 장갑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보자면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통으로 묶는 벙어리형 보다는 다섯 손가락을 각기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손락형이 자유롭고 편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벙어리 장갑이 세상에서 멸종되지 아니하고 끈질긴 명맥을 이어온 이유는 나름이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 중 으뜸은 심미적인 이유라고 본다. ‘벙어리장갑 = 귀여움’ 등식이 성립한다. 벙어리형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

카테고리 없음 2025.05.01

쿨병은 쿨하지 않다

작년 프랑스 올림픽을 통해 급부상한 운동선수의 인터뷰 중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SNS에서 선수를 향해 멋지다고 언급한 일론머스크의 피드를 봤는지.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는지 소감을 물었다. 선수의 대답인 즉 “그냥 그랬어요” 진행자가 의아해하며 일론머스크의 인상이 어떤지 다시금 물으니 “뭐 그냥 돈 많은 아저씨” 내가 출전한 경기를 보고 멋지다고 말해주는데 그게 누가됐든 지나가는 사람 아무개한테라도 응원 받으면 고맙다고 말하는게 자연스럽지 않나? 쿨병 보균자는 쿨병 감염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나는야 장기간 쿨병으로 와병생활한 이분야 최고권위자로써 몇가지 증상만으로도 어느정도는 진단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분 쿨병 투병 중이신것 같다. 병세가 자못 위중하다. 아무쪼록 빠른 쾌유를 빈다.최고권위자 답게 ‘..

카테고리 없음 2025.03.01

비계적 가난과 경제적 비만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본식부터 간식까지 종류가 워낙 다양해 뭘 먹어야하나 선택장애가 올만큼 풍요의 시대다. 심지어 밖에 나가지 않고도 휴대폰으로 손가락 몇번만 튕기면 세계의 만찬을 곧장 집으로 배달시켜주니 차릴 필요도 없이 그저 뜯어서 먹기만 하면 된다. 티비를 틀어도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식사 시간대의 프로들은 노골적인 편인데 음식에 카메라를 잔뜩 줌인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음식을 바로 내 코 앞에 들이대는 것 같다. 티비의 열기인지 음식의 뜨끈함인지 헷갈린다. 모니터를 뚫고 음식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흡사 기만행위의 고문과 같다. 이러한 고문이 가장 잔혹하게 자행되는 곳은 단연 헬스클럽 러닝머신 위에 설치된 티비..

카테고리 없음 2025.02.23

주말 오후 4시

시간에 따라 햇빛의 색깔이 달라지는거 아니? 아침에는 로즈골드 색으로 반짝이고 점심에는 형광등처럼 환하게 쨍하거든. 해질녘 오후에는 레몬버터크림 색으로 따스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나는 주말 오후 4~5시를 제일 좋아해. 해가 완전히 넘어가는 늦은 오후엔 황금 오렌지와 라벤더빛 보라색이 구름을 쓰다듬어줘. 시간이 더 흐르면 태양은 투명하게 짙은 남색을 남기고 돌아서지. 태양의 뒷머리채를 잡아끌어 더 앉아있다 가라고 붙들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아. 그치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어. 모래같이 반짝이는 별빛과 매일 달라지는 얼굴로 방긋 인사해 주는 달빛이 있으니까.시간의 흐름은 색깔만 바뀌는게 아니라 생각도 바꿔놓나봐. 아침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앞으로의 인생과 소망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반..

카테고리 없음 2025.02.23

아무튼 데모

아무튼 데모 - 정보라이 나이쯤 먹으면 처음 접하는 유형의 사람은 점점 드믈어 지는데 정보라 작가는 이런 나의 안일한 사고방식을 비웃듯 한번에 격파 시켜버렸어. 세상에 데모를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라니 넌 들어봤니?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장애인 차별철폐, 쌍용차 부당해고, KTX 비정규직 해고 등등 우리사회에 굵직한 데모뿐만 아니라 내가 잘 몰랐던 데모들도 정작가는 참으로 성실하게도 참여했더라.일단 초반부에는 충격적이었어. 이렇게까지 한다고? 솔직히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이고 사건사고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잖아. 그러다보니 나랑은 크게 관계 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 않겠어? 뭐 관계성을 찾으라면 찾을 수 있겠지. 억울한 일을 당한 이의 마음은 어떨지 상식적 수준의 공감능력을 ..

카테고리 없음 202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