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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방

김영심 2025. 12. 25. 16:54

아이슬란드까지 와서 빨래방이라니. 소중한 돈과 그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을 투여한 여행인데 빨래 같은 행위로 상당량의 자원을 허비해야 할까? 라고 아주 잠깐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언제나처럼 정작 어불성설은 빨래가 아닌 내 생각이다.

아무리 황금 같은 여행이라도 쉼표가 필요하다. 쉼표의 빨래방에 왔기에 지금처럼 글 한줄이나마 쓸 수 있게 된 것이 그 증거이다. 휴식의 대명사인 여행이라는 행위에서 조차 그럴진데 일상에서라면 더욱 쉼표를 자주 찍어줘야 밸런스가 맞춰지겠구나 싶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쉬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마도 어렸을 때 읽은 개미와 배짱이 우화에서부터 발발되었다고 추측한다. 나를 포함한 전 지구적 어린아이들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일꾼으로 길러지기 위한 사상적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고 이 보다 더 푹 쉴 수  없을 정도이지만 머리 한쪽 구석엔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할 빡빡한 일정을 상기하면 기껏 좋은 풍광을 봐 두어 시원했던 가슴이 삽시간에 답답해진다.

휴식의 죄책감을 논하기 이전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휴식을 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충분한 휴식이 얼마만큼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1년에 1~2번은 이런 긴 휴가를 가져야만 더욱 가열차게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는 통계적 데이터가 있다. 욕심부려 건너뛰면 금방 번아웃으로 탈진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앉게 되니 의무적으로라도 쉼표을 찍어줘야 한다. 이왕 찍을거면 제대로 찍자고 다짐한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내 인생의 제대로 된 쉼표이고 빨래방은 아이슬란드 여행 안에서 또 다른 쉼표가 되어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와 함께 아이슬란드 해변의 어느 빨래방에 두둥실 떠다닌다. 건조기에 막 꺼낸 빨래만큼이나 뽀송하게 마른 쉼표를 걷어 올려 바구니에 꾹꾹 눌러 담는다. 캐리어에 차곡차곡 개어넣어 무사히 한국까지 가져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