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본래 의미는 장인이 정성들여 만든 제품이라는 뜻일텐데 제품의 99%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만들고 상표만 유럽에서 붙이는 걸 과연 명품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치품이라고 칭하는게 적합하겠다.
명품이 좋거나 나쁘다의 이분법적인 선, 악의 개념으로 나누는 건 다소 일차원적이라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 자체에서 뿜아져 나오는 아우라로 수수하고 단아한 차림새로 명품 이상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내면이 그렇지는 못하기도 하거니와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유물론적이기도 하여 보이는 것에 상당한 기준을 두기 마련이다. 특히나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는 외관이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오랫동안 서로를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는 내가 명품을 걸치든 거지 발싸게 같은 거적대기를 걸치든 그들과 나의 관계에서는 이미 형성된 유대감이 있기에 외관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를 모르는 일면식인 사람은 나를 평가할 잣대가 오로지 외관밖에 없으므로 명품을 걸치면 여유있는 사람으로 볼테고 거적대기를 걸치면 백수나 노숙자이겠거니 짐작할 수 밖에 없다. 신이 아니고서야 보자마자 나라는 인간의 40여년 간 살아온 인생의 우여곡절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을 무슨 수로 간파하겠는가. 그러니 인간이란 자고로 겉으로 보이는 외피 안쪽의 내면이 품위있어야 한다는 말도 맞고 그에 못지 않게 외관을 아름답게 정제해야 한다는 말도 맞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내, 외면 두루 아름다운 것인데 이 둘의 밸런스 차이가 크게 날 수록 사람은 우수운 꼴이 된다.
나 역시 여느 범인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존재이자 세속적인 인간이므로 당연히 일반이나 보통 보다는 고급이나 특급이 좋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지라 보여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기에 명품 자체를 선호한다기 보다 그러한 상품을 통해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차용한다는 의도에 가깝다.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프라다’인데 그 브랜드의 이미지는 ‘일 하는 여성을 위한 최상품’ 처럼 느껴진다. 누가 그렇다라고 가르쳐준게 아니라 그냥 그 브랜드에서 풍겨지는 냄새가 그렇다는 거다.
이를 착용함으로써 굳이 내 입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저 일 되게 잘 하는 프로패셔널한 사람입니다. 일단 믿고 맡겨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라고 내면은 물론이거니와 ‘프라다’를 걸친 외면까지도 함께 외쳐준다. 일종의 도움닫기랄까.
그러나 명품이든 나발이든 어쨋건 본질은 ‘물건’이다.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물건이 아닌 그 무엇이 될 수 없으며 당연하게도 인간보다 우선일 순 없다. 프라다를 애용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용이해서이지만 그 매장에 가서 받는 친절한 서비스가 아니였으면 절대 그 ‘물건’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프라다 매장을 방문했을 때 친절하지 않거나 서비스가 부족했다고 느낀다면 두번 다시는 프라다에서 파는 상품을 사지 않을 것 같다. 대신에 그와 비슷한 이미지이면서 더 좋은 서비를 제공하는 브랜드 매장에서 돈을 쓰겠지.
이 얘기를 왜 하는고하니 그렇지 않은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절대로 사지 않는 브랜드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최고봉은 에르메스다. 나는 죽을때까지 결코 에르메스에서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물건 주제에 고객이 머리를 조아리게 하고, 물건이 언제 들어오는지도 모르며 그 조차도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도 없는 그릇이나 식기를 먼저 구매해서 실적을 쌓아하는 업체의 물건을 굳이 왜 사는가. 세상에 물건을 그 업체에서만 파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예쁘지도 않다. 비슷한 예로 고객을 매장 밖에서 기다리게 하거나 오픈런이라며 줄세우기를 하는 브랜드는 절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물건파는 장사치가 미천한 고객 나부랭이에게 시혜를 베풀어 황금 같은 물건을 고가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하사시어 보은을 내리는 형국이라니 치욕스럽기 그지 없다. 물건을 물건으로 두지 않고 사람 머리 위에 올려 뒀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제는 그러한 브랜드를 사는 사람은 자존심도 없는 인간 같아서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브랜드마다 표방하는 이미지를 논하기 이전에 고객을 하대하는 장사치에게 감히 내 소중한 돈을 하사하고 싶은 의향은 없다. 돈이라는 것은 좋은 기운인데 그 좋은 기운을 나를 무시하여 부정적인 에너지로 되돌려주는 엉뚱한 곳에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즐겨하는 브랜드에서 실망한 서비스를 받은적은 없기에 물건이 필요할 때에는 동일한 브랜드에서 구입할 계획이다. 사실 명품이라는 것도 기준이 느슨해져 단순히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정도를 넘어 고객을 감동시키는 수준으로 닿아야 하는데 감동이라는 건 물건에서 오는게 아니라 사람이 제공한 서비스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느끼는 감동도 있지만 그 역시 제작자가 사용자를 배려하여 섬세하게 기획 한 의도와 정성으로 빚어 낸 꼼꼼한 만듬새로부터 발현된 것임을 떠올리면 결국 감동은 언제나 사람으로부터 기인한다.
나의 특기는 ‘타산지석’이자 ‘자기교훈’으로 남 욕 실컷하고 마무리는 꼭 ‘근데 나는 어떠한가?’로 맺는다. 나와 우리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명품인가.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여기에서 더 개선할 점은 무엇일까.
감동은 느낌인데 느낌에는 강도와 세기가 있다. 더 진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리고 우리회사는 명품인가.